2005/06/02 14:38

[남도] “光州를 따라 했는데 내쫓다니요” / 2005.05.18

난민지위 거부당한 미얀마 출신 마웅저씨

‘광주’영향 88년 버마항쟁 참여 지하활동중 신변위협 94년 입국
최근 난민신청 법무부 최종기각 “돌아가라는 건 죽으러가라는 것”

거리를 가득메운 시민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군부독재에 온몸으로 대항한다. 순식간에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휩싸인 도시는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하지만 그 불꽃은 이내 군부의 폭압적인 진압으로 수천의 사상자를 내며 피로 물들게 된다.

80년 5월 광주가 아니다.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지 8년뒤인 지난 88년 8월8일 미얀마의 수도 랭군에서 일어났던 버마민중항쟁이다.

당시 버마민중항쟁의 기폭제는 5·18 광주민중항쟁이었다. 80년 5월 광주를 뒤흔든 함성이 산맥과 바다를 가로질러 동남아시아까지 도달한 것이다.

마웅저씨(37)도 당시 버마민중항쟁의 중심에 있었다. 미얀마 양곤시 출생인 그는 지난 1988년 민주화 봉기에 가담한 이후 지하활동을 계속하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94년 10월 한국에 입국했다.

마웅저씨는 “지난해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지 여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라면서 “아웅산 수지여사의 동지의 나라에서 민주화를 배우고 싶어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살아있는 광주정신을 직접 몸으로 배우고 익혀 반드시 고국의 민주화에 이바지할 것”이라던 마웅저씨의 2번째 광주방문은 씁쓸하기만 했다.

2000년 동료 8명과 함께 낸 난민인정 신청이 지난달 13일 법무부로부터 최종 기각돼 한국을 떠나야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오는 7월13일까지 출국 유예를 받아놓긴 했지만 이번달로 예정된 행정 소송에서도 지면 결국 한국을 떠날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는 “미얀마 정부가 한국에서의 나의 행적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을 텐데, 지금 상태로 돌아가라는 것은 죽으러 가라는 말이나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입국후 마웅저씨는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하면서 고국 민주화를 위한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를 결성해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불과 20∼30년전 한국도 많은 민주인사들이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민주화를 이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이제는 한국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이를 되갚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시아의 희망인 광주를 품은 한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화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또 “한국은 정부나 정치인보다 일반 국민의 민주의식이 높다고 생각한다”면서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2번째 광주방문이지만 올 때마다 ‘한국민주주의를 키운 힘’을 느끼게 하는 곳”이라며 애정도 보였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마웅저씨의 떨리는 목소리에 묻어난 불안감과 한국 정부에 대한 서운함이 광주의 5월을 순간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끝내 어쩔 수 없었다.

강현석 기자 kaja@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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