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05-09-15 19:39]
“가족을 못 만난지도 벌써 11년이나 됐네요. 명절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지난 14일 경기 부천의 성가병원 응급실. 윈민우(37·미얀마)씨가 신장 투석을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 있고, 주위에는 마웅저(36)씨 등 세명의 동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얀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군사정권 추적을 피해 1994년과 96년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지난 3월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지위 인정불허 통보를 받은 뒤 7월 행정소송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9명 중 4명이다.
96년 한국으로 건너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화학·가구공장 등에서 일하던 윈민우씨는 2002년 신장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다. 이후 약물치료를 했지만 상태가 악화돼 병원으로부터 수술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재한 미얀마공동체 회장으로 부천 석왕사에서 18일 추석에 맞춰 열리는 미얀마인을 위한 축제를 준비하던 윈민우씨는 수술 날짜를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죽을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결국 이날 병원으로 향했고 수술에 앞서 신장 투석을 받았다.
윈민우씨의 침대 주위를 정리하던 마웅저씨는 “이 친구는 마음이 외로워 병이 난 것 같아요. 추석이랑 설날만 되면 몸도 마음도 힘들거든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미얀마에도 추석 같은 명절이 있다”며 “추석은 미얀마 음력으로 7월 15일인데 양력으로는 보통 10월쯤이고 이때는 한 가정이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가족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등 한국의 명절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마웅저씨에 따르면 한국에 사는 미얀마인은 2000∼2500명으로 추정된다. 그 중 산업연수생 등 합법적 체류자는 1200명 정도다. 이들도 한국의 명절에 맞춰 석왕사에 모여 미얀마에서 모셔온 불상을 보며 대화를 나누며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동포들을 만나도 가족을 대신하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더구나 불법체류자 단속이 심해져 예전에는 1000명 정도가 모였는데, 올해는 500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모아(34)씨는 “명절이면 부모님과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하게 나는데 고국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는 처지”라며 “전화나 편지도 당국의 검열이 심해 거의 하지 못하고 가끔 아는 사람을 통해 잘 지낸다는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는 20대 초반에 대부분 결혼하는데 한국에서 배우자를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 이미 포기했다”며 “그나마 TV가 유일한 가족처럼 느껴진다”며 씁쓸해했다.
쩌쩌르윈(35)씨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들끼리 도우며 간신히 살고 있다”며 “병원에서 일단 수술부터 하고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동료 수술비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럴 때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부천=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가족을 못 만난지도 벌써 11년이나 됐네요. 명절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지난 14일 경기 부천의 성가병원 응급실. 윈민우(37·미얀마)씨가 신장 투석을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 있고, 주위에는 마웅저(36)씨 등 세명의 동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얀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군사정권 추적을 피해 1994년과 96년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지난 3월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지위 인정불허 통보를 받은 뒤 7월 행정소송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9명 중 4명이다.
96년 한국으로 건너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화학·가구공장 등에서 일하던 윈민우씨는 2002년 신장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다. 이후 약물치료를 했지만 상태가 악화돼 병원으로부터 수술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재한 미얀마공동체 회장으로 부천 석왕사에서 18일 추석에 맞춰 열리는 미얀마인을 위한 축제를 준비하던 윈민우씨는 수술 날짜를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죽을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결국 이날 병원으로 향했고 수술에 앞서 신장 투석을 받았다.
윈민우씨의 침대 주위를 정리하던 마웅저씨는 “이 친구는 마음이 외로워 병이 난 것 같아요. 추석이랑 설날만 되면 몸도 마음도 힘들거든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미얀마에도 추석 같은 명절이 있다”며 “추석은 미얀마 음력으로 7월 15일인데 양력으로는 보통 10월쯤이고 이때는 한 가정이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가족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등 한국의 명절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마웅저씨에 따르면 한국에 사는 미얀마인은 2000∼2500명으로 추정된다. 그 중 산업연수생 등 합법적 체류자는 1200명 정도다. 이들도 한국의 명절에 맞춰 석왕사에 모여 미얀마에서 모셔온 불상을 보며 대화를 나누며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동포들을 만나도 가족을 대신하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더구나 불법체류자 단속이 심해져 예전에는 1000명 정도가 모였는데, 올해는 500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모아(34)씨는 “명절이면 부모님과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하게 나는데 고국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는 처지”라며 “전화나 편지도 당국의 검열이 심해 거의 하지 못하고 가끔 아는 사람을 통해 잘 지낸다는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는 20대 초반에 대부분 결혼하는데 한국에서 배우자를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 이미 포기했다”며 “그나마 TV가 유일한 가족처럼 느껴진다”며 씁쓸해했다.
쩌쩌르윈(35)씨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들끼리 도우며 간신히 살고 있다”며 “병원에서 일단 수술부터 하고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동료 수술비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럴 때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부천=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