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bs.co.kr/article/4321/200601/20060115/824860.html
[국제] 공존하는 아시아② - 버림 받은 땅 '메솟 난민촌'
<앵커 멘트>
태국의 작은 도시 메솟. 이 곳에는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규모 난민촌에 있는 20만명의 미얀마 난민들입니다. 이들은 미얀마 군사정권의 탄압과 경제적 빈곤을 피해 국경을 넘어왔지만,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만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리포트>
태국 방콕에서 차량으로 8시간을 달리면, 미얀마와 인접한 국경도시 메솟에 이릅니다. 이 곳에는 대규모 난민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부분 미얀마 군부세력의 정치적인 탄압과 경제적인 빈곤을 피해 국경을 넘어 온 사람들입니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미얀마 난민 4만명이 살고 있는 멜라 난민촌입니다. 맨 처음 맞닥뜨린 것은 검문소. 민간복장을 한 태국경찰들이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검문소를 통과한 뒤 좁은 산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지 1시간쯤.. 난민촌의 경계를 나타내는 철조망을 통과하자, 곳곳에 작은 집들이 눈에 띕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맨발로 놀고 있는 난민촌의 어린이들이 먼저 취재진을 반깁니다.
여느 농촌 마을 같은 풍경. 10년째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42살 쓰와씨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여섯 가족의 점심 시간.. 배급받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기름에 튀긴 음식이 한끼 식사의 전붑니다.
인터뷰> 어탄소(미얀마 난민): (이게 점심의 다 인가요?) “네. 이게 점심의 다 입니다.”
쌀과 밀가루 등 식료품은 외부 NGO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쓰와(미얀마 난민): “우리 난민들이 배급받고 있는 것은 쌀, 콩, 전분 그리고 소량의 소금이 전부입니다.”
이 곳 난민들에게 배고픔과 굶주림은 일상이 됐습니다. 다른 방, 한켠. 쓰와씨의 부인이 며칠째 누워 있습니다. 어깨통과 두통을 심하게 앓고 있지만, 병원에 갈 엄두도 내기 못합니다.
<인터뷰> 예종(미얀마 난민): “목이 몹시 아프고, 두통까지 심한 상태입니다.”
난민촌 안에 임시 진료소가 설치돼 있지만 상주하는 의사가 없기 때문에 문은 늘 닫혀있습니다. 일단 난민으로 등록돼 난민촌에 들어오게 되면, 함부로 외부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난민촌 사람들에게 외부 진료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뷰> 딜라(미얀마 난민): “우리는 난민이기 때문에 허가 없이 밖에 나가면 단속에 걸립니다. 그래서 바깥을 나가기가 무섭습니다.”
메솟지역에 미얀마 난민들이 모이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80년대 후반부텁니다. 민주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사정권의 탄압과 경제적인 빈곤을 피해 많은 미얀마인들이 무작정 국경을 넘었습니다.
현재 공식적인 난민촌은 24곳으로 모두 20만명 가량이 수용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외에도 난민촌에 등록되지 않은 채 도시 주변에서 살아가는 미얀마인들은 수만 명이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메솟 외곽에 있는 미얀마인 집단 거주 지역입니다. 녹슨 양철이 벽을 대신하고 나뭇잎을 지붕삼아 하늘을 가렸습니다.
<인터뷰> 라씨(메솟 주민): “대부분의 집에 5명 정도가 살고 있고 때론 10명,11명이 같이 살기도 합니다.”
5명이 같이 살고 있는 집안. 성인 두명이 누워 있기에도 비좁습니다. 낡은 옷가지와 빈 그릇만이 놓여있습니다. 바닥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인터뷰> 난민 어린이: (지금 몇 살이에요?) “13살이요” “12살이요” (지금 학교는 다니세요?) “아니요 학교 안 가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 안 다닙니다.”
저녁 식사시간, 4명의 식구가 둘러앉아 있습니다. 아무런 반찬도 없지만, 이렇게 한끼라도 때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인터뷰> 미얀마 난민: (먹을 것은 충분하세요?) “음식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족하지만 서로 나눠 먹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를 태국 경찰의 단속입니다.
<인터뷰> 미얀마 난민: (언제 경찰에 단속될지 두렵나요?) “네. 두렵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먹고살기 위해 여기서 머물러야 합니다.”
더욱 절박한 것은 난민촌 학생들의 교육 문젭니다.
<인터뷰>아우아우(15살, 난민): (전혀 읽을 줄 모르나요?) “네. 읽을 줄 모릅니다.”
멜라 난민촌 안에 있는 한 유치원입니다. 교사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누(난민촌 유치원 교사): (지금 뭘 하시는거죠?)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벽에 붙이고, 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학생들의 교재와 학습도굽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습 교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무루(난민촌 유치원 교사): 교재가 없기 때문에 저희들이 더 생각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어려움이 많습니다.
필기도구와 노트를 담아놓은 서랍은 텅 비어 있습니다. 짧막한 몽당 연필 몇개가 손에 잡힙니다.
<인터뷰> 이누(난민쵼 유치원 교사): “처음 한번만 ngo로부터 지원 받았을뿐 그 뒤로는 지원이 없어 늘 학용품이 부족합니다.”
간판도 없는 이 허름한 2층 건물이 아이들의 숙소이자 학굡니다. 이 곳에 있는 어린이 26명은 모두 고아들입니다. 부모들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거나, 미얀마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감옥에 투옥된 사람들입니다.
<인터뷰> 난민 어린이: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나요?) “보고 싶어요. 엄마가 미얀마에 멀리 떨어져 있는데 제발 나한테 연락을 주세요.”
이국 난민촌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 교과서도 없고, 연필도 부족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만큼은 뜨겁습니다.
<인터뷰> 난민 어린이: (어떤 과목을 제일 잘 하니?) “영어” “영어” “모든 과목” “미얀마어”
이 학교의 일년 운영비는 4만바트. 우리 돈으로 100만원 정돕니다. 이마저도 지금까지 외국 ngo 등의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외부 도움이 줄어들면서 학교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터뷰> 민민(영치우 초등학교 책임자):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이렇게 학교를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교육을 받을 수 잇는 학생은 전체 난민촌 어린이 가운데 10%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0%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부천에서는 메솟의 어린이를 돕자는 작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미얀마 이주노동자 50여명과 국내 시민, 노동단체가 함께 마련한 행사였습니다.
<인터뷰> 최현자(부천노동자의 집 국장): “아시아가 함께 발전할 때 한국도 한국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시민들이 또 한국사회가 아시아에 대해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꼭 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난 2003년부터 한푼 두푼 모아진 후원금은 3천만원에 이릅니다. 모두 메솟지역 초등학교 4곳의 운영비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모아(미얀마 이주노동자): “어린이들이 교육을 많이 받게 된다면, 버마 민주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난민촌에 아침이 다시 찾아 왔습니다. 올해 다섯살인 노헤타양..난민촌에서 태어난 이 어린 소녀는 아직 철조망 넘어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노헤타의 장래 희망은 영어선생님, 이 어린 소녀의 소박한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부모는 딸의 미래를 약속하지 못합니다.
<인터뷰> 나크포리(미얀마 난민): “아이들이 무언가 필요해서 요구 할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렇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군사정권의 탄압과 빈곤을 피해 낯선 땅으로 건너왔지만, 여전히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미얀마 난민들. 이들은 오늘도 국제적인 관심과 지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제] 공존하는 아시아② - 버림 받은 땅 '메솟 난민촌'
<앵커 멘트>
태국의 작은 도시 메솟. 이 곳에는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규모 난민촌에 있는 20만명의 미얀마 난민들입니다. 이들은 미얀마 군사정권의 탄압과 경제적 빈곤을 피해 국경을 넘어왔지만,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만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리포트>
태국 방콕에서 차량으로 8시간을 달리면, 미얀마와 인접한 국경도시 메솟에 이릅니다. 이 곳에는 대규모 난민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부분 미얀마 군부세력의 정치적인 탄압과 경제적인 빈곤을 피해 국경을 넘어 온 사람들입니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미얀마 난민 4만명이 살고 있는 멜라 난민촌입니다. 맨 처음 맞닥뜨린 것은 검문소. 민간복장을 한 태국경찰들이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검문소를 통과한 뒤 좁은 산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지 1시간쯤.. 난민촌의 경계를 나타내는 철조망을 통과하자, 곳곳에 작은 집들이 눈에 띕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맨발로 놀고 있는 난민촌의 어린이들이 먼저 취재진을 반깁니다.
여느 농촌 마을 같은 풍경. 10년째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42살 쓰와씨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여섯 가족의 점심 시간.. 배급받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기름에 튀긴 음식이 한끼 식사의 전붑니다.
인터뷰> 어탄소(미얀마 난민): (이게 점심의 다 인가요?) “네. 이게 점심의 다 입니다.”
쌀과 밀가루 등 식료품은 외부 NGO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쓰와(미얀마 난민): “우리 난민들이 배급받고 있는 것은 쌀, 콩, 전분 그리고 소량의 소금이 전부입니다.”
이 곳 난민들에게 배고픔과 굶주림은 일상이 됐습니다. 다른 방, 한켠. 쓰와씨의 부인이 며칠째 누워 있습니다. 어깨통과 두통을 심하게 앓고 있지만, 병원에 갈 엄두도 내기 못합니다.
<인터뷰> 예종(미얀마 난민): “목이 몹시 아프고, 두통까지 심한 상태입니다.”
난민촌 안에 임시 진료소가 설치돼 있지만 상주하는 의사가 없기 때문에 문은 늘 닫혀있습니다. 일단 난민으로 등록돼 난민촌에 들어오게 되면, 함부로 외부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난민촌 사람들에게 외부 진료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뷰> 딜라(미얀마 난민): “우리는 난민이기 때문에 허가 없이 밖에 나가면 단속에 걸립니다. 그래서 바깥을 나가기가 무섭습니다.”
메솟지역에 미얀마 난민들이 모이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80년대 후반부텁니다. 민주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사정권의 탄압과 경제적인 빈곤을 피해 많은 미얀마인들이 무작정 국경을 넘었습니다.
현재 공식적인 난민촌은 24곳으로 모두 20만명 가량이 수용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외에도 난민촌에 등록되지 않은 채 도시 주변에서 살아가는 미얀마인들은 수만 명이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메솟 외곽에 있는 미얀마인 집단 거주 지역입니다. 녹슨 양철이 벽을 대신하고 나뭇잎을 지붕삼아 하늘을 가렸습니다.
<인터뷰> 라씨(메솟 주민): “대부분의 집에 5명 정도가 살고 있고 때론 10명,11명이 같이 살기도 합니다.”
5명이 같이 살고 있는 집안. 성인 두명이 누워 있기에도 비좁습니다. 낡은 옷가지와 빈 그릇만이 놓여있습니다. 바닥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인터뷰> 난민 어린이: (지금 몇 살이에요?) “13살이요” “12살이요” (지금 학교는 다니세요?) “아니요 학교 안 가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 안 다닙니다.”
저녁 식사시간, 4명의 식구가 둘러앉아 있습니다. 아무런 반찬도 없지만, 이렇게 한끼라도 때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인터뷰> 미얀마 난민: (먹을 것은 충분하세요?) “음식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족하지만 서로 나눠 먹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를 태국 경찰의 단속입니다.
<인터뷰> 미얀마 난민: (언제 경찰에 단속될지 두렵나요?) “네. 두렵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먹고살기 위해 여기서 머물러야 합니다.”
더욱 절박한 것은 난민촌 학생들의 교육 문젭니다.
<인터뷰>아우아우(15살, 난민): (전혀 읽을 줄 모르나요?) “네. 읽을 줄 모릅니다.”
멜라 난민촌 안에 있는 한 유치원입니다. 교사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누(난민촌 유치원 교사): (지금 뭘 하시는거죠?)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벽에 붙이고, 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학생들의 교재와 학습도굽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습 교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무루(난민촌 유치원 교사): 교재가 없기 때문에 저희들이 더 생각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어려움이 많습니다.
필기도구와 노트를 담아놓은 서랍은 텅 비어 있습니다. 짧막한 몽당 연필 몇개가 손에 잡힙니다.
<인터뷰> 이누(난민쵼 유치원 교사): “처음 한번만 ngo로부터 지원 받았을뿐 그 뒤로는 지원이 없어 늘 학용품이 부족합니다.”
간판도 없는 이 허름한 2층 건물이 아이들의 숙소이자 학굡니다. 이 곳에 있는 어린이 26명은 모두 고아들입니다. 부모들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거나, 미얀마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감옥에 투옥된 사람들입니다.
<인터뷰> 난민 어린이: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나요?) “보고 싶어요. 엄마가 미얀마에 멀리 떨어져 있는데 제발 나한테 연락을 주세요.”
이국 난민촌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 교과서도 없고, 연필도 부족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만큼은 뜨겁습니다.
<인터뷰> 난민 어린이: (어떤 과목을 제일 잘 하니?) “영어” “영어” “모든 과목” “미얀마어”
이 학교의 일년 운영비는 4만바트. 우리 돈으로 100만원 정돕니다. 이마저도 지금까지 외국 ngo 등의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외부 도움이 줄어들면서 학교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터뷰> 민민(영치우 초등학교 책임자):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이렇게 학교를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교육을 받을 수 잇는 학생은 전체 난민촌 어린이 가운데 10%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0%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부천에서는 메솟의 어린이를 돕자는 작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미얀마 이주노동자 50여명과 국내 시민, 노동단체가 함께 마련한 행사였습니다.
<인터뷰> 최현자(부천노동자의 집 국장): “아시아가 함께 발전할 때 한국도 한국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시민들이 또 한국사회가 아시아에 대해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꼭 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난 2003년부터 한푼 두푼 모아진 후원금은 3천만원에 이릅니다. 모두 메솟지역 초등학교 4곳의 운영비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모아(미얀마 이주노동자): “어린이들이 교육을 많이 받게 된다면, 버마 민주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난민촌에 아침이 다시 찾아 왔습니다. 올해 다섯살인 노헤타양..난민촌에서 태어난 이 어린 소녀는 아직 철조망 넘어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노헤타의 장래 희망은 영어선생님, 이 어린 소녀의 소박한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부모는 딸의 미래를 약속하지 못합니다.
<인터뷰> 나크포리(미얀마 난민): “아이들이 무언가 필요해서 요구 할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렇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군사정권의 탄압과 빈곤을 피해 낯선 땅으로 건너왔지만, 여전히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미얀마 난민들. 이들은 오늘도 국제적인 관심과 지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