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홍(bugulbugul) 기자
"1947년 2월 12일 버마 샨 지방의 팡론시에서 버마, 친, 카친, 샨족 대표가 모여 '완전한 자치권과 소수자 권리 보호'를 합의했다.(Panglong Agreement) 이후 연방헌법에서 연방에서 탈퇴할 권리가 명시되고 샨족과 카레니족이 서명한다. 사실상 자유롭게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 그러나 1952년 버마군이 샨을 점령하고, 196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네윈 정권은 연방헌법을 폐기해 버렸다. 이후 버마 각 지역에선 소수민족들의 무장투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2시 부천 원미구청 대회의실엔 약 70여명의 버마 국민들이 모였다. 이날은 우리나라 전통 명절인 대보름이었지만, 모인 사람들은 자뭇 심각했고, 분위기는 숙연했다. 이날 행사가 '버마 소수민족 연합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공식 국호는 '미얀마'이지만, 현 군사정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거 국호인 '버마'를 사용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모인 사람들 또한 미얀마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있어 '버마'라는 옛 국호를 사용한다.)
▲ 지난 12일 2시 부천 원미구청 대회의실엔 약 70여명의 버마 국민들이 모여 '버마 소수민족 연합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조심스런 분위기는 이미 행사 참가 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주최 측으로부터 "버마인들한테 불필요한 불안함을 줄 수 있으니 촬영에 조심해 달라"고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자칫 얼굴이 알려져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피해 받을 것을 우려하는 버마인들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버마는 현재 최대 종족인 버마족을 비롯 카렌족, 카친족 등 8개 주요 민족과 13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다. 샨족, 카렌족 등 일부가 반군으로 활동하며 지금도 버마 정부와 대립중이다. 아웅산 수치(버마식 발음, 수지는 영어식 발음)가 버마 민주화를 내걸고 투쟁중이지만, 각 소수민족별 이해관계가 달라 통일전선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행사는 국내에서 제각기 활동중인 버마 소수민족 단체들간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뤄졌다. 행사엔 아웅산 수치가 의장으로 있는 NLD(National Leageu for Democracy)를 비롯, 버마행동(버마 이주 노동자 모임), APEBC(버마 태국 국경 어린이들 지원 단체), 새천년저널(The Millennium Window News journal)과 칭족 굿끼족 등 소수민족 단체들이 참가했다.
행사를 준비한 버마행동의 소모뚜씨는 "국내에서 활동중인 버마 민주화 활동가가 100명이 채 안된다"며 정부 탄압 때문에 드러내놓고 활동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꽤 많은 인원이 참석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행사는 연합의 날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자유 발언, 버마 역사를 담은 영상 상연 등으로 꾸며졌다. 주위엔 버마가 다 민족 국가인 걸 알 수 있도록 각 소수 민족을 소개한 사진이 전시됐다. 단상에 오른 행사 운영위원 세 제민 아움씨는 "59년전 2월 12일 소수민족 독립이 합의됐지만, 아웅산 장군이 암살된 뒤 수포로 돌아갔다"며 지난 역사를 이야기했다.
행사를 구경하다 이날 행사 준비위원으로 참가한 마웅저씨(성공회대 NGO정보센터 객원연구원, APEBC 대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 왜 미얀마라는 국호 대신 버마라는 옛 국호를 쓰나.
"사실 '미얀마'와 '버마'는 같은 단어다. 그러나 미얀마는 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바꾼 이름이다. 우리는 현 군사정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나라 이름이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국민 의사라면 '버마'라는 명칭도 문제 있는 것 아닌가? 다수 민족인 버마인을 대표하는 국호 아닌가.
"맞다. 나라가 민주화돼 모든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다면, 국호는 그 때 가서 다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수민족의 뜻을 사실상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미얀마'란 국호는 군사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
- 군사정부가 왜 국호를 '미얀마'로 바꾼 것인가.
"1988년 8월 8일 엄청난 학생들이 사망한 '버마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다. 아마 군사정부가 그 이미지를 없애고 싶었을 것이다."
- 버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소수민족이 있나.
"대표민족만 8개고, 소수민족까지 포함하면 130여개가 넘는다."
- 오늘 행사를 개최한 동기가 무엇인가?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기 위한 것인가.
"그것보다는 소수민족간 연대에 비중을 뒀다. 국내엔 단체가 있는 민족이 있고, 없는 민족이 있다. 단체가 있고 없고를 떠나, 소수 민족간 교류와 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 이날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 오늘 이 자리에서 단체 통합이 이뤄져서 통일된 단체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여러 소수민족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은 이렇게 모인데 의미를 두고, 앞으로 계속 만나면서 단체 통합을 이야기할 것이다."
- 소수 민족 갈등도 문제지만 종교 갈등도 문제 아닌가. 과거 카렌불교도군이 전선을 벗어나 정부군에 가담한 적도 있는데.
"맞다. 제일 큰 문제이기도 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단순히 군부독재가 무너진다고 해서 버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민족, 다종교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민족화해 위해선 경제 제재 어쩔 수 없어
- 국제 버마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버마 경제 지원 반대를 외친다. 결국 군부를 배불린다는 점 때문이지만, 결국 국민들도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나.
"나도 (경제제재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활동 때문에 주민이 힘들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한다. 버마에서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모두 소수민족들이 사는 땅이다. 경제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소수민족들에게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만약 소수 민족 지역의 자원 개발이 이뤄진다면 소수 민족과 버마족 사이에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민족화해 때문에 그 방법밖엔 없다. 또한 외국기업이 투자하면 정부가 마약으로 번 돈을 돈 세탁하는데 쓰이게 된다. 우리가 투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으로 투명한 제도가 마련되면 그때 투자해 달라는 것이다."
- 군사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끊임없이 민주화 운동과 무장 투쟁이 벌어졌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보나.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62년 이후 네윈 정권이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한 이후엔 오히려 영국 식민지 시절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
- 버마 정부가 바뀌기 위해선 결국 국제 사회의 압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우선 한국 기업가들이 (버마) 투자를 조심스럽게 했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버마 민주화와 인권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이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화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 버마를 바꾸는 것은 결국 버마 내에서 활동 중인 단체들이다. 국내 단체들을 해외에서 어떻게 지원하나. 가령 돈이라든지.
"물론 돈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제 연대다. 그게 버마 내 단체들에게 더 도움 되는 일이다."
- 국제단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론 군사력을 동원한 방법과 외교 경제적 방법이 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칸, 유고슬라비아처럼 군사력을 사용해서 정부를 교체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버마 문제는 군사정부가 물러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소수 민족 문제, 빈곤 문제는 그것과는(군사정부 교체) 별개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아웅산 수치를 지지하는 것이다."
행사장을 빠져나올 때 입구에 걸린 그림 한 장을 보았다. 여러 소수민족들이 국기 주위에 서 있고, 그 위엔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여러 민족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주최 측의 마음이 그림 속에 녹아 있었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10376
"1947년 2월 12일 버마 샨 지방의 팡론시에서 버마, 친, 카친, 샨족 대표가 모여 '완전한 자치권과 소수자 권리 보호'를 합의했다.(Panglong Agreement) 이후 연방헌법에서 연방에서 탈퇴할 권리가 명시되고 샨족과 카레니족이 서명한다. 사실상 자유롭게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 그러나 1952년 버마군이 샨을 점령하고, 196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네윈 정권은 연방헌법을 폐기해 버렸다. 이후 버마 각 지역에선 소수민족들의 무장투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2시 부천 원미구청 대회의실엔 약 70여명의 버마 국민들이 모였다. 이날은 우리나라 전통 명절인 대보름이었지만, 모인 사람들은 자뭇 심각했고, 분위기는 숙연했다. 이날 행사가 '버마 소수민족 연합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공식 국호는 '미얀마'이지만, 현 군사정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거 국호인 '버마'를 사용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모인 사람들 또한 미얀마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있어 '버마'라는 옛 국호를 사용한다.)
▲ 지난 12일 2시 부천 원미구청 대회의실엔 약 70여명의 버마 국민들이 모여 '버마 소수민족 연합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조심스런 분위기는 이미 행사 참가 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주최 측으로부터 "버마인들한테 불필요한 불안함을 줄 수 있으니 촬영에 조심해 달라"고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자칫 얼굴이 알려져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피해 받을 것을 우려하는 버마인들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버마는 현재 최대 종족인 버마족을 비롯 카렌족, 카친족 등 8개 주요 민족과 13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다. 샨족, 카렌족 등 일부가 반군으로 활동하며 지금도 버마 정부와 대립중이다. 아웅산 수치(버마식 발음, 수지는 영어식 발음)가 버마 민주화를 내걸고 투쟁중이지만, 각 소수민족별 이해관계가 달라 통일전선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행사는 국내에서 제각기 활동중인 버마 소수민족 단체들간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뤄졌다. 행사엔 아웅산 수치가 의장으로 있는 NLD(National Leageu for Democracy)를 비롯, 버마행동(버마 이주 노동자 모임), APEBC(버마 태국 국경 어린이들 지원 단체), 새천년저널(The Millennium Window News journal)과 칭족 굿끼족 등 소수민족 단체들이 참가했다.
행사를 준비한 버마행동의 소모뚜씨는 "국내에서 활동중인 버마 민주화 활동가가 100명이 채 안된다"며 정부 탄압 때문에 드러내놓고 활동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꽤 많은 인원이 참석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행사는 연합의 날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자유 발언, 버마 역사를 담은 영상 상연 등으로 꾸며졌다. 주위엔 버마가 다 민족 국가인 걸 알 수 있도록 각 소수 민족을 소개한 사진이 전시됐다. 단상에 오른 행사 운영위원 세 제민 아움씨는 "59년전 2월 12일 소수민족 독립이 합의됐지만, 아웅산 장군이 암살된 뒤 수포로 돌아갔다"며 지난 역사를 이야기했다.
행사를 구경하다 이날 행사 준비위원으로 참가한 마웅저씨(성공회대 NGO정보센터 객원연구원, APEBC 대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 왜 미얀마라는 국호 대신 버마라는 옛 국호를 쓰나.
"사실 '미얀마'와 '버마'는 같은 단어다. 그러나 미얀마는 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바꾼 이름이다. 우리는 현 군사정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나라 이름이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국민 의사라면 '버마'라는 명칭도 문제 있는 것 아닌가? 다수 민족인 버마인을 대표하는 국호 아닌가.
"맞다. 나라가 민주화돼 모든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다면, 국호는 그 때 가서 다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수민족의 뜻을 사실상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미얀마'란 국호는 군사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
- 군사정부가 왜 국호를 '미얀마'로 바꾼 것인가.
"1988년 8월 8일 엄청난 학생들이 사망한 '버마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다. 아마 군사정부가 그 이미지를 없애고 싶었을 것이다."
- 버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소수민족이 있나.
"대표민족만 8개고, 소수민족까지 포함하면 130여개가 넘는다."
- 오늘 행사를 개최한 동기가 무엇인가?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기 위한 것인가.
"그것보다는 소수민족간 연대에 비중을 뒀다. 국내엔 단체가 있는 민족이 있고, 없는 민족이 있다. 단체가 있고 없고를 떠나, 소수 민족간 교류와 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 이날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 오늘 이 자리에서 단체 통합이 이뤄져서 통일된 단체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여러 소수민족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은 이렇게 모인데 의미를 두고, 앞으로 계속 만나면서 단체 통합을 이야기할 것이다."
- 소수 민족 갈등도 문제지만 종교 갈등도 문제 아닌가. 과거 카렌불교도군이 전선을 벗어나 정부군에 가담한 적도 있는데.
"맞다. 제일 큰 문제이기도 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단순히 군부독재가 무너진다고 해서 버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민족, 다종교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민족화해 위해선 경제 제재 어쩔 수 없어
- 국제 버마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버마 경제 지원 반대를 외친다. 결국 군부를 배불린다는 점 때문이지만, 결국 국민들도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나.
"나도 (경제제재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활동 때문에 주민이 힘들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한다. 버마에서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모두 소수민족들이 사는 땅이다. 경제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소수민족들에게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만약 소수 민족 지역의 자원 개발이 이뤄진다면 소수 민족과 버마족 사이에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민족화해 때문에 그 방법밖엔 없다. 또한 외국기업이 투자하면 정부가 마약으로 번 돈을 돈 세탁하는데 쓰이게 된다. 우리가 투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으로 투명한 제도가 마련되면 그때 투자해 달라는 것이다."
- 군사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끊임없이 민주화 운동과 무장 투쟁이 벌어졌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보나.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62년 이후 네윈 정권이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한 이후엔 오히려 영국 식민지 시절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
- 버마 정부가 바뀌기 위해선 결국 국제 사회의 압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우선 한국 기업가들이 (버마) 투자를 조심스럽게 했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버마 민주화와 인권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이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화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 버마를 바꾸는 것은 결국 버마 내에서 활동 중인 단체들이다. 국내 단체들을 해외에서 어떻게 지원하나. 가령 돈이라든지.
"물론 돈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제 연대다. 그게 버마 내 단체들에게 더 도움 되는 일이다."
- 국제단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론 군사력을 동원한 방법과 외교 경제적 방법이 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칸, 유고슬라비아처럼 군사력을 사용해서 정부를 교체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버마 문제는 군사정부가 물러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소수 민족 문제, 빈곤 문제는 그것과는(군사정부 교체) 별개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아웅산 수치를 지지하는 것이다."
행사장을 빠져나올 때 입구에 걸린 그림 한 장을 보았다. 여러 소수민족들이 국기 주위에 서 있고, 그 위엔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여러 민족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주최 측의 마음이 그림 속에 녹아 있었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10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