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남매 중 막내인 저는 어렸을 때 엄마가 동생을 낳아주셨으면 하고 빌곤 했습니다. 형과 누나들이 저를 잘 챙겨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면 그 소원은 더 간절해졌고, 만약 동생이 있으면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세 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으니 실제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었습니다.
대신 제게는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조카들이 여럿 있습니다. 어떤 조카들은 저를 형이나 오빠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조카들과 함께 있을 때 아주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88년 버마의 8888민주항쟁에 참여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카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하나둘씩 잃고 말았습니다. 한참 꿈꾸고 배우고 뛰어 놀고 있는 한국 아이들을 보면 조카들 생각을 하곤 합니다.
2003년부터는 다문화를 주제로 한국의 초중학교 학생들에게 버마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를 “아저씨, 삼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초중학교 친구들이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달리 통역이 없어도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친구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그 친구들은 저에게 선생님과도 같았습니다. 다문화 수업이 끝난 지금도 저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저에게 안부편지와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는 친구들도 꽤 있습니다. 그 친구들 때문에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버마에 관한 언론 보도가 나오면 “마웅저 아저씨의 나라 버마”라고 외치면서 부모님께 보여주는 친구들 덕분에 버마와 아시아는 그 가족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친구들!”
초중학교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한편으로는 이우고등학교, 부천 고리울청소년문화의 집, 하자센터, 미지센터, 성미산학교 등의 청소년들도 만나며 친해졌습니다.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저에게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문화교류활동은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버마와 태국 국경지대에는 메솟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버마로부터 도망 나온 난민들과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 있고 자신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분야는 메솟에 있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교육문제입니다. 버마 군부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을 소년병으로 징집하거나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성과 마약을 파는 처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버마 민주화와 아시아 연대를 위해서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교육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그 사회의 희망이자 기쁨입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은 것은 바로 버마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눈망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눈망울이 빛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의 제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친하게 지내는 한국 청소년들 중 어떤 친구들은 버마와 태국 국경지대에 버마 청소년들이 있는 지역(난민촌)까지 가서 교류활동을 했습니다. 세상을 만나지 못하는 버마 청소년들은 한국 청소년들을 통해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곳에 다녀온 한국 청소년들은 버마라는 나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임을 한국 사회에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버마의 군부독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버마인들과 함께 힘을 쓰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해외 교류활동을 통해 동남아시아는 가난한 지역 그리고 투자와 관광 지역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친근한 아시아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가 연대하는 것보다 먼저 청소년들이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아시아 연대 활동은 잘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청소년들의 관심과 자신감을 키워주면 우리 모두가 원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친구들!
마웅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