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아시아의 시민이 되고픈 마웅쩌를 만나다.
인터뷰 및 편집: 『민주사회 교육』 편집팀
■ 2005년 4월 24일 4시 부천역에 편집팀 편집위원 4인이 모였다. 부천의 지리를 잘 모르는 관계로 택시를 타고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으로 향했다.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음에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물을 출입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꽤 많은 방이 있었다. 로비에는 수십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한 편에서는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취재를 나온 KBS 촬영팀도 보였다. 최현자 사무국장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마웅쩌를 소개받았다. 그는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녹차 한 잔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주사회와 교육 편집팀(이하 민주사회) : 이렇게 인터뷰에 기쁘게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담이 되시겠지만 편안하게 대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선 본인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웅쩌씨를 이전부터 알고 있는 분도 있겠지만 잘 모르시는 사회 교사 분들도 많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자신의 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마웅쩌: 저는 버마(미얀마) 사람입니다. 1988년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처럼 버마에서도 민주화운동(8888항쟁)이 일어났어요. 저는 그 때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대학 선배의 권유로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그로 인해 신변의 위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94년에 말에 저의 선배나 친구들이 거의 다 체포당했어요. 그래서 해외로 도망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제가 버마에서 보았던 한국은 민주화의 나라였거든요.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 한국사회가 생각만큼 그렇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들어온 것은 버마에서 할 수 없는 민주화운동하려는 것이었지만 우선 제가 부딪힌 것은 이주 노동자라는 저의 신분이었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외국문제 특히, 버마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버마의 민주화 운동도 필요했지만, 당장 필요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이주 노동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부분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 저희도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현재까지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도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한 90년 중반부터 현재까지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있었던 일, 지금의 삶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한국에서 버마가 민주화될 수 있도록 운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활동을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2명, 2000년 1명의 버마 민주화운동가들이 체포당했습니다. 불법체류자로 말이죠. 그들이 버마로 추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많은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불법체류자로서 민주화운동을 진행하기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어서 2000년 5월 NLD 한국지부에서 활동하던 저와 민주화운동 동지들 21명이 한국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성공회대학 NGO 대학을 다녔습니다. 한국의 NGO 운동을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버마 민주화 운동, 이주노동자운동을 하면서 여러 시민단체들에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활동을 하다 지금은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회대학에서 공부하다보니 한국말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해서 한국어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또한 작은 시민단체도 만들었어요. 버마 이주민, 난민들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아시아 곳곳에 있습니다. 약 50만 명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아이들이 있는데 학교를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있죠. 이주노동자들이 모금활동 등을 해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너무 슬퍼요.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난민신청의 결과가 3월 12일에 나왔는데 기각이랍니다. 한국 땅을 떠나라고 합니다. 5년 내내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이렇게 가면 3~4개월 후에 떠나야 합니다. 나 혼자면 모르겠으나 나 혼자가 아니라 9명입니다. NLD 4명 나머지 5명. 한국정부가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방법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땅에서 버마가 민주화될 때 까지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 땅에서 시민단체 활동도 하고 싶습니다.
민주사회: 이번 결정은 대단히 갑자기 이루어진 면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고려가 있든 듯 합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마웅쩌 : 2003년 초에 3명, 2005년에 4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난민 인정을 받은 그 친구들과 6~7년 동안 버마 민주화운동을 해왔습니다. 버마에서도, 한국에서도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똑같습니다. 차이점은 그 친구들은 정당 운동을 통해 버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이고 나는 정치보다는 한국사회의 시민운동, 난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한국정부의 난민 인정의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부는 난민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의 난민문제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사회: 3개월 연장이 되었다는데...
마웅쩌: 우리가 연장신청을 해 3개월이 연장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문제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난민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열심히 하려합니다. 시민단체와 함께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행정 소송입니다. 그 외 다른 방법도 생각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지만 한 편으로 한국정부의 난민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민주사회: 다른 이야기인데요...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궁금증 입니다. 90년에 진행되었던 선거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버마 민족민주동맹(NLD)이 선거에서 승리를 했는데 정권이 이양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입니다. 아웅산 수지가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이것이 인정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69년 이후에 버마식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졌으나 군부독재정권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입니다.
1988년 까지 군부독재가 계속되었지요. 1988년 4월, 민주화 봉기가 전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군부정권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은 버마 국민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90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어겼습니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84%의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를 했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이양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감금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버마의 감옥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국가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버마의 민주화 세력 중 많은 사람들이 독재의 폭력을 피해 버마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지금도 민주화를 위해 싸움입니다. 그리고 버마에 남은 일부 세력은 무장 항쟁으로 자신의 투쟁방식을 바꾼 세력도 있습니다.
민주사회: 88년 이후 발생한 쿠데타를 보니 한국의 12․12, 5․17이 생각납니다.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요. 버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십시오.
마웅쩌: 군부독재가 무너져도 그 뒤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독재를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뒤의 문제보다는 쉬운 것 같습니다. 독재를 끝내고 그 뒤에 남겨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해 또 다른 군부독재가 등장할 것입니다. 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키스탄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독재가 무너지는 것보다 평화의 정신이 더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군부독재가 무너지더라고 평화정신이 없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봅니다. 버마에는 소수민족이 많습니다. 많은 소수민족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보고 자랍니다.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은 버마에 대항하여 총을 들고 싸우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버마의 평화는 없습니다. 민족간의 화해도 없습니다.
민주사회: 버마에서 국민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한국에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버마에는 국가보안법보다 더한 법이 있습니다.
5명 이상의 사람이 모였을 때 ‘이상하다’, ‘의심스럽다’라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체포할 수 있다는 법, 부모님 집에 가서 잘 때도 신고를 해야 하고, 마음 속으로 사람을 비난하거나 증오해도 법에 걸립니다. 완전히 통제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사회: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회원들이 몇 명인지, 그리고 그 곳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마웅쩌: 지금 총 21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3년에 NLD에서 탈퇴했습니다.
NLD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 씩 버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합니다. 또한 한국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서명운동도 진행합니다. 그 밖에도 국회 앞 시위, 한국의 정당들에 우리의 문제를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탈퇴는 했지만 NLD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 단체의 운동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나면 NLD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NLD 한국지부 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모색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 버마의 사회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버마도 한국과 같은 가부장적 사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버마의 여성,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버마에 있을 때 어머니, 누나들의 삶을 옆에서 보았어도 여성의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던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 70-80%가 믿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불교 안에서 여성과 남성은 엄격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부처는 남자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웅산 수지입니다. 전통, 관습을 따르자면 여자를 한 국가의 지도자로써 인정한다는 것은 버마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아웅산 수지를 둘러싸고 이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버마의 다수의 사람들이 그녀를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버마 여성이 한국의 여성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습니다. 버마의 여성은 성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아이가 아빠 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민주사회: 이주노동자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주노동자로서 보기에 94년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리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 중 보완하거나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마웅쩌: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대략 40만 명 정도이고 이들의 대부분이 동남아시아인들입니다.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을 보는 것과 한국에 들어와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낫지만.... 저도 버마에 있을 때 한국을 잘 몰랐고, 언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와 이주 노동자가 처음 배우는 말이 욕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와 다른 부당한 대우들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임금이나 노동조건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저도 처음 와서 7개월 동안 일했지만 6개월 치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요일 쉬고 월요일 출근했더니 회사는 없어졌고 사장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주위의 한국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었겠지만 한국말을 못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한국인에 대해 나쁜 감정도 많이 가졌습니다. 사실 저의 경험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비해 힘든 상황이 아닙니다. 다른 이주 노동자들은 임금을 못 받는 것은 물론, 다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 대단히 많습니다.
고용허가제가 얼마 전부터 실시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제는 있지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노동허가제입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한국의 노동자보다 불평등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빨리 고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동남아시아에서는 한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동생들, 친구들이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노래에 열광합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이주노동자 정책으로 인해 나쁜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한국 정부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민주사회: 한국에서 지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사회의 모습 중 이해가 되지 않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셨던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위안부 문제가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수십 년 전의 일인데 한국 시민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95년 정도잖아요. 왜 그 동안 한국 시민들이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는지. 또 왜 국가보안법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양한 민족들이 연대운동, 화해운동 하고 있는데, 왜 한 민족만 있는 한반도에서 화해가 힘든가도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988년에 우리는 소수민족들 간의 화해가 한 번 되었어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유명한 이유가 그거예요. 영국이 ‘해방을 원하는 것은 버마주이다. 다른 주들은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이 ‘그럼 소수민족들이 원한다는 것을 보여줘라.’라고 요구했지요. 이 때 아웅산 수지 여사가 소수민족들에게 우리 같이 대항하자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버마와 같이 민족이 다양한 나라에서도 민족간 화해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한반도에서는 왜 (화해가)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민주사회 : 민족주의는 그 국가의 경계를 넘지 못하잖아요. 민족주의를 허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웅쩌: 제가 버마 안에 있을 때에는 민족주의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마음이 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민족국가라서) 민족주의가 강해진다면 소수민족 간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들 중 민족주의가 표방하는 나라들이 생기게 되면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되기 힘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일 운동,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제가 참여할 수 있는 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 문제, 한반도의 평화, 국가보안법의 문제가 한반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아시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시아인이 비록 피부와 언어가 다르더라도 아시아의 문제, 아시아의 인권, 평화, 민주화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 영국, 독일 등과 같은 강대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리고 제가 아시아인들에 강조하는 것도 민족주의보다는 인권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사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마웅쩌: 고용허가제가 이전보다 나은 제도이지만 만족스런 제도는 아닙니다. 한국 정부가 노동허가제로 정책을 전환하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한국 땅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버마의 평화나 인권 해결의 방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민주사회: 오늘 인터뷰한 내용은 사회교사모임 회지에 실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교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나, 사회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꼭 가르쳤으면 하는 것, 혹은 사회교사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평생학습원에서 만난 당산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초대로 초등학생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가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을 아이들이 만나면 아이들은 인권에 관심이 많아지고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평화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을 만나면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요. 제가 만난 선생님들은 모두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본을 미워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일본이 한 행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을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한국의 선생님들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의 아이들이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만 알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대해 학생들이 잘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버마의 문제,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러한 교육이 되지 않는다면 모든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평화와 인권에 많은 관심과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사회: 정리하겠습니다. 장시간 인터뷰에서 많은 이야기들, 버마민주화운동에서 이주노동자 문제, 아이들의 문제까지 많은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잘 정리해서 사회교사모임 회지에 실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교사들에게 마웅쩌씨의 생각과 의견을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아시아의 시민이 되고픈 마웅쩌를 만나다.
인터뷰 및 편집: 『민주사회 교육』 편집팀
■ 2005년 4월 24일 4시 부천역에 편집팀 편집위원 4인이 모였다. 부천의 지리를 잘 모르는 관계로 택시를 타고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으로 향했다.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음에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물을 출입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꽤 많은 방이 있었다. 로비에는 수십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한 편에서는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취재를 나온 KBS 촬영팀도 보였다. 최현자 사무국장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마웅쩌를 소개받았다. 그는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녹차 한 잔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주사회와 교육 편집팀(이하 민주사회) : 이렇게 인터뷰에 기쁘게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담이 되시겠지만 편안하게 대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선 본인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웅쩌씨를 이전부터 알고 있는 분도 있겠지만 잘 모르시는 사회 교사 분들도 많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자신의 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마웅쩌: 저는 버마(미얀마) 사람입니다. 1988년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처럼 버마에서도 민주화운동(8888항쟁)이 일어났어요. 저는 그 때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대학 선배의 권유로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그로 인해 신변의 위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94년에 말에 저의 선배나 친구들이 거의 다 체포당했어요. 그래서 해외로 도망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제가 버마에서 보았던 한국은 민주화의 나라였거든요.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 한국사회가 생각만큼 그렇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들어온 것은 버마에서 할 수 없는 민주화운동하려는 것이었지만 우선 제가 부딪힌 것은 이주 노동자라는 저의 신분이었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외국문제 특히, 버마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버마의 민주화 운동도 필요했지만, 당장 필요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이주 노동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부분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 저희도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현재까지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도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한 90년 중반부터 현재까지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있었던 일, 지금의 삶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한국에서 버마가 민주화될 수 있도록 운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활동을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2명, 2000년 1명의 버마 민주화운동가들이 체포당했습니다. 불법체류자로 말이죠. 그들이 버마로 추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많은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불법체류자로서 민주화운동을 진행하기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어서 2000년 5월 NLD 한국지부에서 활동하던 저와 민주화운동 동지들 21명이 한국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성공회대학 NGO 대학을 다녔습니다. 한국의 NGO 운동을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버마 민주화 운동, 이주노동자운동을 하면서 여러 시민단체들에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활동을 하다 지금은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회대학에서 공부하다보니 한국말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해서 한국어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또한 작은 시민단체도 만들었어요. 버마 이주민, 난민들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아시아 곳곳에 있습니다. 약 50만 명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아이들이 있는데 학교를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있죠. 이주노동자들이 모금활동 등을 해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너무 슬퍼요.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난민신청의 결과가 3월 12일에 나왔는데 기각이랍니다. 한국 땅을 떠나라고 합니다. 5년 내내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이렇게 가면 3~4개월 후에 떠나야 합니다. 나 혼자면 모르겠으나 나 혼자가 아니라 9명입니다. NLD 4명 나머지 5명. 한국정부가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방법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땅에서 버마가 민주화될 때 까지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 땅에서 시민단체 활동도 하고 싶습니다.
민주사회: 이번 결정은 대단히 갑자기 이루어진 면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고려가 있든 듯 합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마웅쩌 : 2003년 초에 3명, 2005년에 4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난민 인정을 받은 그 친구들과 6~7년 동안 버마 민주화운동을 해왔습니다. 버마에서도, 한국에서도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똑같습니다. 차이점은 그 친구들은 정당 운동을 통해 버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이고 나는 정치보다는 한국사회의 시민운동, 난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한국정부의 난민 인정의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부는 난민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의 난민문제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사회: 3개월 연장이 되었다는데...
마웅쩌: 우리가 연장신청을 해 3개월이 연장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문제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난민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열심히 하려합니다. 시민단체와 함께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행정 소송입니다. 그 외 다른 방법도 생각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지만 한 편으로 한국정부의 난민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민주사회: 다른 이야기인데요...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궁금증 입니다. 90년에 진행되었던 선거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버마 민족민주동맹(NLD)이 선거에서 승리를 했는데 정권이 이양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입니다. 아웅산 수지가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이것이 인정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69년 이후에 버마식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졌으나 군부독재정권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입니다.
1988년 까지 군부독재가 계속되었지요. 1988년 4월, 민주화 봉기가 전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군부정권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은 버마 국민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90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어겼습니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84%의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를 했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이양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감금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버마의 감옥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국가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버마의 민주화 세력 중 많은 사람들이 독재의 폭력을 피해 버마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지금도 민주화를 위해 싸움입니다. 그리고 버마에 남은 일부 세력은 무장 항쟁으로 자신의 투쟁방식을 바꾼 세력도 있습니다.
민주사회: 88년 이후 발생한 쿠데타를 보니 한국의 12․12, 5․17이 생각납니다.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요. 버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십시오.
마웅쩌: 군부독재가 무너져도 그 뒤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독재를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뒤의 문제보다는 쉬운 것 같습니다. 독재를 끝내고 그 뒤에 남겨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해 또 다른 군부독재가 등장할 것입니다. 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키스탄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독재가 무너지는 것보다 평화의 정신이 더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군부독재가 무너지더라고 평화정신이 없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봅니다. 버마에는 소수민족이 많습니다. 많은 소수민족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보고 자랍니다.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은 버마에 대항하여 총을 들고 싸우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버마의 평화는 없습니다. 민족간의 화해도 없습니다.
민주사회: 버마에서 국민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한국에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버마에는 국가보안법보다 더한 법이 있습니다.
5명 이상의 사람이 모였을 때 ‘이상하다’, ‘의심스럽다’라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체포할 수 있다는 법, 부모님 집에 가서 잘 때도 신고를 해야 하고, 마음 속으로 사람을 비난하거나 증오해도 법에 걸립니다. 완전히 통제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사회: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회원들이 몇 명인지, 그리고 그 곳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마웅쩌: 지금 총 21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3년에 NLD에서 탈퇴했습니다.
NLD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 씩 버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합니다. 또한 한국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서명운동도 진행합니다. 그 밖에도 국회 앞 시위, 한국의 정당들에 우리의 문제를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탈퇴는 했지만 NLD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 단체의 운동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나면 NLD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NLD 한국지부 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모색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 버마의 사회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버마도 한국과 같은 가부장적 사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버마의 여성,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버마에 있을 때 어머니, 누나들의 삶을 옆에서 보았어도 여성의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던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 70-80%가 믿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불교 안에서 여성과 남성은 엄격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부처는 남자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웅산 수지입니다. 전통, 관습을 따르자면 여자를 한 국가의 지도자로써 인정한다는 것은 버마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아웅산 수지를 둘러싸고 이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버마의 다수의 사람들이 그녀를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버마 여성이 한국의 여성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습니다. 버마의 여성은 성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아이가 아빠 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민주사회: 이주노동자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주노동자로서 보기에 94년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리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 중 보완하거나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마웅쩌: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대략 40만 명 정도이고 이들의 대부분이 동남아시아인들입니다.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을 보는 것과 한국에 들어와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낫지만.... 저도 버마에 있을 때 한국을 잘 몰랐고, 언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와 이주 노동자가 처음 배우는 말이 욕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와 다른 부당한 대우들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임금이나 노동조건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저도 처음 와서 7개월 동안 일했지만 6개월 치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요일 쉬고 월요일 출근했더니 회사는 없어졌고 사장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주위의 한국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었겠지만 한국말을 못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한국인에 대해 나쁜 감정도 많이 가졌습니다. 사실 저의 경험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비해 힘든 상황이 아닙니다. 다른 이주 노동자들은 임금을 못 받는 것은 물론, 다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 대단히 많습니다.
고용허가제가 얼마 전부터 실시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제는 있지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노동허가제입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한국의 노동자보다 불평등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빨리 고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동남아시아에서는 한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동생들, 친구들이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노래에 열광합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이주노동자 정책으로 인해 나쁜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한국 정부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민주사회: 한국에서 지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사회의 모습 중 이해가 되지 않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셨던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위안부 문제가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수십 년 전의 일인데 한국 시민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95년 정도잖아요. 왜 그 동안 한국 시민들이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는지. 또 왜 국가보안법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양한 민족들이 연대운동, 화해운동 하고 있는데, 왜 한 민족만 있는 한반도에서 화해가 힘든가도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988년에 우리는 소수민족들 간의 화해가 한 번 되었어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유명한 이유가 그거예요. 영국이 ‘해방을 원하는 것은 버마주이다. 다른 주들은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이 ‘그럼 소수민족들이 원한다는 것을 보여줘라.’라고 요구했지요. 이 때 아웅산 수지 여사가 소수민족들에게 우리 같이 대항하자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버마와 같이 민족이 다양한 나라에서도 민족간 화해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한반도에서는 왜 (화해가)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민주사회 : 민족주의는 그 국가의 경계를 넘지 못하잖아요. 민족주의를 허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웅쩌: 제가 버마 안에 있을 때에는 민족주의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마음이 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민족국가라서) 민족주의가 강해진다면 소수민족 간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들 중 민족주의가 표방하는 나라들이 생기게 되면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되기 힘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일 운동,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제가 참여할 수 있는 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 문제, 한반도의 평화, 국가보안법의 문제가 한반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아시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시아인이 비록 피부와 언어가 다르더라도 아시아의 문제, 아시아의 인권, 평화, 민주화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 영국, 독일 등과 같은 강대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리고 제가 아시아인들에 강조하는 것도 민족주의보다는 인권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사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마웅쩌: 고용허가제가 이전보다 나은 제도이지만 만족스런 제도는 아닙니다. 한국 정부가 노동허가제로 정책을 전환하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한국 땅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버마의 평화나 인권 해결의 방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민주사회: 오늘 인터뷰한 내용은 사회교사모임 회지에 실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교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나, 사회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꼭 가르쳤으면 하는 것, 혹은 사회교사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평생학습원에서 만난 당산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초대로 초등학생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가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을 아이들이 만나면 아이들은 인권에 관심이 많아지고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평화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을 만나면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요. 제가 만난 선생님들은 모두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본을 미워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일본이 한 행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을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한국의 선생님들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의 아이들이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만 알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대해 학생들이 잘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버마의 문제,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러한 교육이 되지 않는다면 모든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평화와 인권에 많은 관심과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사회: 정리하겠습니다. 장시간 인터뷰에서 많은 이야기들, 버마민주화운동에서 이주노동자 문제, 아이들의 문제까지 많은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잘 정리해서 사회교사모임 회지에 실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교사들에게 마웅쩌씨의 생각과 의견을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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