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3-29 오후 10:13:02
중학교 졸업 후 저는 양곤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88년 3월 동네사람과 대학생들 싸움으로 시작된 싸움에 경찰이 개입하고, 결국엔 경찰의 총에 학생이 죽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언론을 통해 죽음을 은폐 왜곡하고 이 사건으로 전국의 모든 대학은 폐쇄조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지역에서 이후의 새로운 시위를 준비고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대학생형 역시 지하 써클멤버로 시위를 준비하면서 고등학생인 저와 제 친구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후 저는 자연스럽게 대학생들과 지내면서 모임도 함께 하고 시위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각자 지역으로 돌아가 준비한 전국적인 시위가 8888항쟁(88년8월8일에 일어난 미얀마민중항쟁)입니다.
89년엔 선배가 90년엔 친구 두 명 이후 매년 한 두 명씩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믿을만한 친구는 모두 체포되었고, 92년 이후는 저는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를 떠나서 자유롭게 활동 할 수 있게,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의 준비 끝에 한국에 갈 수 있는 비자를 얻었습니다. (당시 체포되었던 선배와 친구들을 태국, 미국, 미얀마에서 아직도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94년에 한국에 오게된 저는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같은 코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불법체류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 중 조국 버마의 민주화에 관심이 있고 활동하던 친구들이 모여 버마민족민주동맹한국지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민지위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으면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을 방문했고, 미얀마의 민주화 문제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점차 제 생각은 조금씩조금씩 변화되었습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군사독재에 대한 미움과 증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그들을 몰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간 한국의 친구들을 통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국의 민주화라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관심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정치활동이 아니라 우리나라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 그리고 인권과 평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돈버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온 이유가 돈을 벌어 본국에 송금해 제 개인과 가족의 안위를 지키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랜 고민과 망설임 끝에 저는 제가 처음 한국이란 나라를 고민했던 시기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은 제가 미얀마로 돌아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준비중입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시민단체를 방문하고, 미얀마의 상황을 한국의 시민사회에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국버마 국경지역에 아이들을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글로 저를 다 설명 드릴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관심과 애정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선생님의 글에서 이런 문구를 봤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갑니다’라는 글을 말입니다.
중학교 졸업 후 저는 양곤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88년 3월 동네사람과 대학생들 싸움으로 시작된 싸움에 경찰이 개입하고, 결국엔 경찰의 총에 학생이 죽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언론을 통해 죽음을 은폐 왜곡하고 이 사건으로 전국의 모든 대학은 폐쇄조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지역에서 이후의 새로운 시위를 준비고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대학생형 역시 지하 써클멤버로 시위를 준비하면서 고등학생인 저와 제 친구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후 저는 자연스럽게 대학생들과 지내면서 모임도 함께 하고 시위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각자 지역으로 돌아가 준비한 전국적인 시위가 8888항쟁(88년8월8일에 일어난 미얀마민중항쟁)입니다.
89년엔 선배가 90년엔 친구 두 명 이후 매년 한 두 명씩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믿을만한 친구는 모두 체포되었고, 92년 이후는 저는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를 떠나서 자유롭게 활동 할 수 있게,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의 준비 끝에 한국에 갈 수 있는 비자를 얻었습니다. (당시 체포되었던 선배와 친구들을 태국, 미국, 미얀마에서 아직도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94년에 한국에 오게된 저는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같은 코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불법체류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 중 조국 버마의 민주화에 관심이 있고 활동하던 친구들이 모여 버마민족민주동맹한국지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민지위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으면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을 방문했고, 미얀마의 민주화 문제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점차 제 생각은 조금씩조금씩 변화되었습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군사독재에 대한 미움과 증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그들을 몰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간 한국의 친구들을 통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국의 민주화라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관심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정치활동이 아니라 우리나라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 그리고 인권과 평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돈버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온 이유가 돈을 벌어 본국에 송금해 제 개인과 가족의 안위를 지키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랜 고민과 망설임 끝에 저는 제가 처음 한국이란 나라를 고민했던 시기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은 제가 미얀마로 돌아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준비중입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시민단체를 방문하고, 미얀마의 상황을 한국의 시민사회에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국버마 국경지역에 아이들을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글로 저를 다 설명 드릴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관심과 애정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선생님의 글에서 이런 문구를 봤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갑니다’라는 글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