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에 해당되는 글 11건
- 2008/11/15 이제야 통장을 만들 수 있고, 비행기를 탈 수 있습니다! (2)
- 2008/11/14 기자회견 사진("NLD 한국지부" 홈 페이지에서 옮겼습니다)
- 2008/11/14 생명평화환경농업 대축제 행사에
- 2008/11/14 오체투지 사진
- 2008/11/12 미얀마 법원, 민주운동가 14명에 징역 65년 형 선고
- 2008/11/12 만화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20년형
- 2008/11/12 한반도평화연구원 제10회 공개포럼
- 2008/11/12 길 위에서 케이크에 초를 꽂다…'비바 버마!
- 2008/11/12 한국서 `난민' 인정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 2008/11/12 이주민 시민활동가의 오체투지
- 2008/11/12 잘 다녀오겠습니다
반정부민주화 투쟁을 하고 있는 저는 고향(버마)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고향과 제일 가까운 태국입니다. 태국은 버마와 국경을 하고 있고 그 곳에는 버마군사독재를 피해 이주해 온 난민들과 이주민 활동가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오래 전 부터 가보고 싶었습니다. 비행기 표 비용에 대해 돈을 모아주는 한국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저는 지난 9월 25일전까지는 한국을 공식적으로 벗어 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 날 수 있는 방법은 강제 출국 혹은 스스로 버마로 가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한국에 난민 인정을 받으면 무엇을 달라져나?
2000년에 저와 친구(버마 민주화운동 활동가)들 난민지위 신청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후인 2005년에 일방적인 불허 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변호사님들과 시민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행정 소송을 진행 했습니다. 지난 9월 25일 대법원 1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저를 비롯한 8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난민인정 불허결정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신청하지 8년만에 받는 난민인정 지위로 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행증명서와 정식적으로 통장을 개설 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난민인정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처럼 난민에 대한 지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정부가 버마의 군부독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가고 싶은 이유
버마를 떠난 지난 14년 동안 저는 제 고향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난민지위를 인정 받은 지금부터는 버마의 민주화가 오기 전까지는 그 시간이 얼마가 되었건 저는 절대로 버마 땅으로 갈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고향과의 가까일 곳에 가서 고향을 바라보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태국은 버마와 접한 5개 나라 중에 한 나라입니다. 저의 소개로 몇 년 전부터 해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버마-태국 국경지역에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태국 국경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국경지역을 다녀온 한국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제 마음의 위안을 삼았습니다. 비록 국경에 간다 하더라도 고향에 살고 있는 친척과 조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국경지역에 있는 다른 조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버마가 보이는 국경지역에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다 하고 동료들, 아이들을 만나고 다녀오겠습니다.
미얀마 법원이 11일 14명의 저명한 민주운동가들에게 각각 징역 65년 형을 선고했다.
'88 세대 학생 그룹' 소속의 민주운동가 14명은 이날 양곤에 있는 인세인 교도소에서 열린 재판에서 이 같은 판결을 받았다고 이들의 친척들은 밝혔다.
친척들은 재판에 가족들은 물론 변호인조차 참석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교도소 관리들로부터 이 같은 선고 내용을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이들 민주운동가들은 지난 1988년 군부의 유혈진압으로 무산된 민주화 운동을 이끈 지도자들로 진압 후 오랜 기간 교도소에서 복역하며 고문 등을 당한 뒤 풀려났으나 미얀마 군정에 대한 공개적인 항의를 재개해 다시 체포됐다.
유세진기자 dbtpwl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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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반체제 인사인 사우 와이는 주간 ‘러브 저널’에 탄 슈웨를 비꼬는 시를 게재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시의 행마다 ‘참모총장 탄 슈웨는 권력을 쥔 바보’란 메시지가 되풀이된다고 BBC는 전했다.
1월에 체포된 네이 폰 라트는 세 가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11일 어머니 아예 탄에게 전달된 법원 판결문에는 나와있다.전기통신법 위반 혐의로 15년형,‘대중을 놀라게 한 혐의’로 2년형,비디오법 위반으로 3년6개월형 등이다.마지막 조항은 판매금지된 비디오를 소지한 혐의로 보인다.
그의 블로그는 지난해 9월 반정부 시위가 비등했을 때 가치없는 정보를 제공한 잘못이 있다는 게 군정의 판단.
어머니 아예 탄은 군정이 허용하지 않아 재판에 출석하지도 못했으며 네이 폰 라트의 변호사인 아웅 테인 역시 지난 주말 법정모욕으로 4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아예 탄은 “우리 아들은 컴퓨터 전문가일 뿐 어떤 형사법도 위반한 적이 없다.저지르지도 않은 전기통신법 때문에 15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공정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야당인 민주정당을 위한 전국연합 대변인인 니얀 윈은 “정부가 정치범들의 재판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형기도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이 정당의 청년 당원이자 주간 뉴스 워치 발행인으로 지난해 체포된 툰 툰 나잉은 지난 7일 19년형을 선고받았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는데 올해 들어 수감된 언론인만 10명에 이른다.
2주 전에도 이들을 변호하던 변호사 3명이 법정에서 불공정한 재판에 항의하다 4~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전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미얀마 특사로 임명,미얀마 군정에 대한 압박을 높여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08년 08월 29일 (금) 11:09:07 | 장은혜 기자 jyh001@allthatnews.co.kr |
한반도평화연구원은 29일 오후 1시 프레스센터 19층에서 북한 인권문제와 세계적 추세란 주제로 공개 포럼을 연다.
제10회 포럼은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기존 논의들을 넘어서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해 보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윤영관(서울대 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원장의 사회로 진행되는 토론의 장은 ‘인권정책: 한국정부의 현실과 세계적 추세’에 대해 박명림 연세대 교수,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원재천 한동대 교수가 발표하고,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이원웅 관동대 교수, 홍성필 연세대 교수가 토론한다.
이어 ‘국제적 경험과 비교연구(외국의 대안모델)’에 대해 김학성 충남대 교수, 마웅저 미얀마 민주화 운동가,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서창록 고려대 교수가 발표하며, 박광기 대전대 교수,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오영달 고려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가 토론한다.
마지막 순서로 ‘북한인권 개선방안’에 대해 라운드테이블 방식으로 토론회가 진행된다.
| [오체투지 23일째] 아시아의 연대, 그리고 평화 | ||
| 2008-09-26 오후 3:25:04 | ||
순례단은 "내린 빗물이 도로에 모여 있어 옷은 젖고 몸은 갈수록 무거워졌다"며 "두 성직자는 '괜찮다, 언제는 이러지 않았나'라고 말했지만, 장갑을 짜면 빗물이 주르륵 쏟아지고, 휴식 때마다 가슴보호대와 상의의 빗물을 짜기 바빴다"고 설명했다.
순례단은 "순례자는 근육을 풀어주는 시간에는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환한 얼굴로 마음을 나눴다"며 "몸은 더 고달프지만,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평화에 마음은 밝기만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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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웅저 씨의 눈물…"평화를 일깨우다"
"하늘에서 별을 땄어요!"
이날 순례단의 분위기는 특히 밝았다. 순례단 진행 팀에서 도로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버마(미얀마) 민주화운동가 마웅저(Maung Zaw) 씨가 8년 간의 지난한 소송 끝에 국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 그는 오후 일정이 시작될 때쯤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버마에서 '행운이 찾아왔다'는 의미로 쓰인다.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해 버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마웅저 씨는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해 한국에 왔다. 그는 지난 2000년 난민 신청을 거부한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결국 8년만에 대법원은 그를 난민으로 인정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저녁, 순례단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케이크를 마련해 마웅저 씨를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케이크 위에 쓴 글씨는 'Viva Birma(버마 만세).'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의 축하가 이어지자 마웅저 씨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버마는 지금도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라며 "이렇게 한국에서 종교가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오체투지를 하고, 내가 이렇게 순례에 참여하는 것은 버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버마인들을 생각해서 민주화를 위해 더욱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5일 마웅저 씨는 '순례에 왜 참여했느냐'는 질문에 "이 오체투지가 언론에도 보도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지면 멀리 아시아까지 이 소식이 퍼지지 않겠느냐"며 "이 오체투지를 통해 아사아 인이 한마음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었다.
순례단은 "이날 대법원의 결정이 마웅저 씨의 고단하기만 했던 삶에 평화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한 사람의 눈물이 순례단 모두에게 평화의 의미를 새롭게 전해줬다"고 밝혔다.
마웅저 씨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으며 현재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웅저 씨는 <프레시안>에 '버마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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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제일주의, 현 정부가 노골적으로 강화해"
이날도 오체투지 순례 길을 멀리서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전북 임실 영천교회의 최정수 목사는 순례를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면서 "경제 제일주의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며 "현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참여 동기를 밝혔다.
지리산 실상사 인근에 사는 김길수 씨는 "이명박 정부가 올곧게 사는 분들을 가만두지 않는 것 같다"며 "최근 벌어지는 정치, 사회 뉴스를 보면 처참해 오체투지를 해야 하는 세상 같아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송희철 씨도 "두 분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특히 숨이 차오르는 소리를 들을 때면 더욱 참기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두 분이 하셔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국민의 소리를 듣고 정치를 하라고 이명박 정부에 메시지를 던지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체투지 순례 23일째인 26일 현재 순례단은 전북 임실의 오류리 이동령 주유소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월평교회를 지나 월평로터리에서 순례를 마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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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순례 참가 일정과 수칙은 '오체투지 순례 카페' 공지사항을 참고하면 된다.
| 김하나/기자 |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운전면허를 따려고 시험장에 갔는데 단지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20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 `2008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해 인권위와 피난처가 공동 주최한 이날 `세계 난민의 날 토론회'에서는 한국의 난민신청제도를 성토하는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12년째 살고 있다는 버마 출신 민주활동가 마웅저씨는 2001년 법무부에 제출한 난민신청이 아직도 계류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오로지 정치적 박해를 피해 들어온 외국인들에 대해서만 난민으로 인정하는 것 같다. 시민사회조차 난민신청 외국인들의 문제가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실망스럽다"고 꼬집었다.
2002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방글라데시 출신 로넬 챠그마 나니씨는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과정도 매우 어려웠지만 "난민 인정을 받고 난 이후도 가시밭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 지위를 받았음에도 자동차운전면허시험장과 은행 등에서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며 "고용주, 심지어 사회단체와 정부 관계자들 조차 난민 등 외국인들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소명의 김종철 변호사도 "한국은 난민제도와 관련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인권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국제 엠네스티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개선 권고와 비판을 받아왔다"며 "그러나 여전히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이호택 피난처 대표는 "난민 인정 절차 및 지원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가운데 난민신청자가 급증하면서 심사 기간이 더욱 장기화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며 대대적인 제도 정비와 지원을 주문했다.
UNHCR 서울사무소 직원인 정현정씨는 "UNHCR의 경험에 따르면 난민 보호에 대한 내용은 출입국을 관장하는 법과는 별개로 구분해 법률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이날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서울 덕수궁 앞에서 `난민과 어울림, 그 하나되는 날' 행사를 열고 시민들을 상대로 국내외 난민 현황, 난민 권리 등을 알리는 퍼포먼스와 캠페인을 진행했다.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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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달만에 처음으로 일해와던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출근했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제가 오체투지 순례단에 참여하는 기간에 예정대로 마포(서울)쪽으로 이사했습니다. 2주간 쉬다가 다시 사무실에 가더니 책상이 없어져다는 이야기들을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시민행동의 새 사무실을 찾아 가보니 저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가워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행동 활동가 분들께 감사하고 미안했습니다. 저는 오체투지 순례단에 참여해서 잘 배우고 있으니 이사하는 것에 대해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오체투지 순례단에 많은 것을 배우고 다녀왔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위해 오래동안 투쟁 중심으로 해와던 저에게 오체투지 순례는 무척 신기하는 일, 매우 부러워하는 일이었습니다. 스님과 신부님은 2달동안 같이 생활하고 함께 오체투지를 하는 것을 보고, 두분 처럼 버마의 종교인들과 시민들도 다민족의 화해와 나라의 평화를 위해 언제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님께서만 배울 수 있는 줄로 생각해서 순례단에 참여하지만 순례중에 만나는 많은 신부님, 스님, 목사님과 시민들께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왔습니다. 진행팀의 팀장님부터 모두 분들의 덕분으로 저는 처음부터 끝가지 순례단에 함께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움 것들
약2달 지리산 노고단에서 계룡산으로 순례길에 저에게 제일 힘든 것은 인터넷과 텔레비전 보기 어려움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 5시에 기산입니다. 맨처음에 제가 오체투지 순례단에 참여하는 일은 3주 밖에 못하 것 같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왜 그 생각하지는 잘 모릅니다만 제가 없으면 한국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은 활동하지 못하 가봐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ㅋㅋㅋ
큰 변화들
비가와도 오체투지를 계속하는 신부님과 스님의 뒤에 따라가는 왜래 피부가 검은 저에게 큰 변화가 많이 있다고 하면 그 중에 피부색이 더 검을게 되는 것이 아니까 싶었습니다. 2008년 오체투지 순례를 마무리하고 그동안 친구들이 해와던 일들을 보니, 제가 있는 것 보다 잘 되고 있습니다. 순례단에 참여해온 저도 인터넷, 텔레비전 등 없는 세상에서도 살 수 있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투쟁하는 운동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돼며, 그 방법들을 찾을 수 있는 자신들도 생긴 것 같았습니다.
오처장님이 보내주신 오체투지
수경 스님과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의 사람의길, 생명의길, 평화의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에 오관영(함께하는 신민행동 사무처장)의 소개로 참여했습니다. 한국에서 조국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운동을 하면서 한국 시민운동도 배우고 있는 저에게 오체투지 순례는 배우기 정말 좋은 기획이 되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계룡산으로 순례 길에서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자 생각의 차이가 있으며 행동도 다릅니다. 그리고 오체투지 순례길에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파이팅, 힘내세요 등 해서 지나가는 분들과 아무 말이 없이 기도하면서 지나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에게 찾아와서 감사한다는 말과 칭찬하기도하고 농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미래의 버마 대통령”이라는 농단하는 분들에게 “오체투지 순례를 배우는 사람은 국회위원도 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 등께서 배운 것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멋진 대통령들을 만드러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과 함께하는 동안 행복하는 것처럼 저람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현재는 그 분들의 과거가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만 저의 미래는 그 분들 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2008년 9월 4일부터 약 2개월 진행 예정하는 “기도-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하려고, 오늘 2일부터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순례인원은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및 진행팀 10여명으로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입니다. 오체투지 순례에 제가 참여하겠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들은 그 오체투지 순례의 의미와 목표, 그리고 제가 참여하는 이유 등을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한국에 살고 있지만 집이 있는 부천과 서울로만 다니면서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이번 오체투지 순례를 통해서 제가 가본 적 없는 한국의 많은 지역들의 주민들도 만날 것입니다. 저의 눈으로 하나씩 확인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다오면 친구들에게 새로운 생각들을 나눠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는 이 오체투지 순례에 잘 다녀오겠습니다.
2008년 9월 2일,
조계사 앞마당에서 마웅저 드림


jyh001@alltha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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